📑 목차
하루 300자라는 목표가 이렇게 무거울 줄은 몰랐다
글쓰기 연습을 시작하면서 내가 가장 현실적으로 세운 목표는 하루 300자였다. 흔히들 말하는 하루 천 자, 이천 자 같은 목표는 시작하기도 전에 부담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그보다는 훨씬 낮춘 기준이었다. 당시의 나는 글쓰기를 오래 이어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하지 않을 정도의 목표가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루 300자는 나름대로 신중하게 고민한 끝에 정한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너무 적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다고 판단한 숫자였다.
300자라면 휴대폰 메모장으로도 금방 쓸 수 있을 것 같았고, 짧은 단락 하나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머릿속으로는 몇 문장만 써 내려가면 자연스럽게 채워질 분량처럼 느껴졌다. 실제로 주변에서 “300자는 금방이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이 목표는 충분히 현실적이라는 확신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 정도 목표라면 매일 빠짐없이 지킬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제로 글쓰기를 시작해보니 이 300자라는 숫자는 생각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졌다. 숫자 자체는 작았지만, 그 숫자를 반드시 채워야 한다는 의식이 글쓰기 전반을 짓눌렀다. 글을 쓰기 전부터 ‘오늘은 300자를 채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고, 그 생각은 곧 부담과 긴장으로 이어졌다. 글쓰기 연습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마음은 지쳐 있었다.
노트북을 켜고 글쓰기 화면을 띄운 뒤 첫 문장을 쓰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다 보면 몇 분이 훌쩍 지나 있었고, 어렵게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다시 그 문장을 읽으며 고치게 되었다. 단어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지웠다 다시 쓰고, 문장 구조가 어색해 보여 다시 손을 보았다. 두 문장을 쓰고 나면 더 이상 이어갈 말이 떠오르지 않았고, 억지로 쓰자니 문장이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문장을 다듬는 데 집중할수록 글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결과 하루 300자를 채우지 못한 채 글쓰기를 멈춘 날이 반복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분명하게 느낀 감정은 좌절감이었다. 이렇게 짧은 분량조차 쓰지 못하는 내가 과연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목표를 낮춰 잡았는데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고, 그 실망은 다음 날 글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부담으로 작용했다. 글을 쓰기도 전에 이미 실패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그 감정은 손을 키보드 위에 올리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분량보다 더 큰 문제는 심리적 저항이었다
하루 300자가 힘들었던 이유는 단순히 글자 수 때문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이 사실을 점점 더 분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실제 문제는 글을 쓰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생겨나는 심리적 저항이었다. 글쓰기 화면을 켜는 순간 괜히 긴장되었고, 지금 쓰려는 문장이 너무 부족해 보였다. 아직 쓰지도 않았는데, 이미 부족하다고 느끼는 감정이 먼저 앞섰다.
분명 연습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이 글을 읽고 평가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따라다녔다. 이 문장이 유치해 보이지는 않을지, 생각이 얕아 보이지는 않을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했다. 그 결과 나는 문장을 쓰자마자 지우고 다시 쓰는 행동을 반복했다.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계속 고치다 보니 한 문장을 완성하는 데 지나치게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렇게 한 문장을 여러 번 수정하는 동안 시간은 흘러갔고, 글자 수는 거의 늘지 않았다. 화면에는 몇 줄 되지 않는 문장만 남아 있었고, 나는 이미 지쳐 있었다. 결국 남는 것은 ‘오늘도 300자를 채우지 못했다’는 결과뿐이었다. 이 시기에는 실제로 글을 쓰는 시간보다, 글을 쓰지 못한 채 고민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지금 돌아보면 글쓰기 초반의 가장 큰 장애물은 실력이 아니라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멈췄던 날들
하루 300자를 쓰지 못했던 날들을 되돌아보면, 대부분 공통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무엇을 써야 할지 몰랐다는 점이다. 글쓰기 연습을 한다고 하면서도 나는 매번 새로운 주제를 정하려고 애썼다. 오늘은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어떤 이야기가 글로서 의미가 있을지를 먼저 고민했다. 그 주제는 어느 정도 깊이가 있어야 했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요구했다.
일상 이야기는 너무 사소하다고 느껴졌고, 그날의 감정을 적는 글은 깊이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글 역시 특별한 통찰이 없으면 쓸 이유가 없다고 여겼다. 이런 기준을 스스로 세워놓으니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주제는 점점 사라졌다. 머릿속에는 분명 생각이 있었지만, 그것을 글로 옮길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손은 멈췄다.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한 채 하루를 넘기는 날이 생겼고, 그런 날이 반복되면서 글쓰기에 대한 부담은 점점 커졌다. 글을 쓰지 못한 날이 늘어날수록 ‘나는 글쓰기에 소질이 없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고개를 들었다. 나중에 기록을 정리해보니 하루 300자를 쓰지 못한 날일수록 주제를 크게 잡았던 날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반대로 아주 사소한 생각이나 그날의 상태를 그대로 적었던 날에는 분량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글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차이는 분명했고, 나에게 중요한 힌트를 주었다.
글자 수에 집착할수록 글은 더 안 써졌다
처음에는 하루 300자를 채우는 것이 목표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점점 그 숫자 자체에 집착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중간중간 지금 몇 자를 썼는지 계속 확인했고, 숫자가 기대만큼 늘지 않으면 마음이 급해졌다. 목표에 못 미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집중력은 급격히 떨어졌고, 어떤 날에는 아예 글쓰기를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실패라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글쓰기는 점점 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특히 시간이 부족한 날에는 ‘오늘은 어차피 300자를 못 쓸 것 같으니 그냥 쉬자’라는 선택을 쉽게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루를 건너뛰는 날이 늘어나자 글쓰기의 리듬은 완전히 깨졌다. 글을 쓰지 않는 날이 많아질수록, 다시 시작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이 시점에서 나는 글자 수 목표가 더 이상 동기부여가 아니라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꼈다. 글쓰기 초반에는 분량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익숙해지는 것이 더 중요했는데, 나는 결과만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 결과 글쓰기는 연습이 아니라 시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루 300자를 넘기기 시작한 작은 변화
하루 300자가 더 이상 부담스럽지 않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한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글자 수를 기준으로 삼는 대신, 시간을 기준으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하루에 몇 자를 쓰겠다고 정하는 대신, 하루 10분만 글쓰기 화면을 켜두겠다고 정했다. 그 시간 동안 무엇을 쓰든, 얼마나 쓰든 상관없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했다.
이 방식은 생각보다 큰 효과를 가져왔다. 글자 수를 신경 쓰지 않으니 문장을 고치느라 멈추는 일이 줄었고, 자연스럽게 다음 문장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완성도를 따지지 않으니 생각이 막히는 순간에도 일단 적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새 300자를 넘긴 날도 생겼다. 물론 여전히 300자를 채우지 못한 날도 있었지만, 그날을 실패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였다. 글쓰기 연습이 다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작은 기준 변화 덕분이었다.
글쓰기 초반의 어려움이 남긴 의미
하루 300자도 힘들었던 글쓰기 초반의 기록을 다시 읽어보면, 지금의 나에게 많은 힌트를 준다. 그 시기의 어려움은 글쓰기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가 아직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 의미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기준, 숫자로 스스로를 평가하려는 습관이 글쓰기를 가로막고 있었다.
이 과정을 겪고 나서야 나는 글쓰기 연습이 결과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생각을 밖으로 꺼내는 연습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루 300자가 힘들었던 경험은 부끄러운 실패가 아니라, 글쓰기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했던 단계였다. 지금도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은 여전히 있지만, 그때마다 이 초반 기록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이게 된다. 글쓰기는 한 번에 잘해지는 일이 아니라, 막히고 멈추고 다시 쓰는 과정을 반복하며 조금씩 이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이 경험이 분명하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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