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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없던 시절의 불안
글쓰기 연습을 시작했을 때, 나에게 가장 부족했던 것은 실력보다 확신이었다. 글을 쓰고 나면 늘 같은 질문이 따라왔다. 이게 과연 의미가 있는지, 계속 쓰면 정말 나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특히 글이 잘 써지지 않는 날에는 그 의문이 더 커졌다. 어제도 별로였고 오늘도 별로라면, 내일은 다를까 하는 생각이 쉽게 들었다. 기록이 없던 시절의 글쓰기는 늘 현재의 상태에만 의존했다.
오늘의 컨디션이 나쁘면 전체 훈련이 흔들리는 느낌이었고, 잘 써진 날이 와도 그 감각은 오래 남지 않았다. 자신감은 늘 불안정했고, 외부 평가나 순간적인 성취에 쉽게 흔들렸다.

기록이 쌓이기 시작한 지점
글쓰기 기록을 의식적으로 남기기 시작하면서, 글쓰기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그날의 분량이나 주제를 적는 수준이었지만, 점차 글을 쓰며 느낀 감정, 막혔던 이유, 쓰고 나서의 상태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이 기록들은 처음에는 별다른 의미 없어 보였다. 오히려 읽어보면 비슷한 고민이 반복되는 것 같아 실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서 기록을 다시 읽어보았을 때, 나는 예상하지 못한 변화를 발견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도, 그 고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고, 문제를 인식하는 언어도 달라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만든 신뢰
글쓰기 기록이 쌓이면서 생긴 자신감은, 잘 쓴 글이 늘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에 띄는 변화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나타났다. 예전에는 도입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는 기록이 많았다면, 최근의 기록에는 도입부를 빠르게 넘겼다는 메모가 보였다. 완성하지 못한 글이 반복되던 시기와 달리, 끝까지 가져간 글이 늘어나는 흐름도 기록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글을 쓰는 순간에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기록을 통해 돌아볼 때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 확인 과정은 나에게 중요한 신뢰를 만들어주었다. 나는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확인할 수 있는 근거를 바탕으로 나 자신을 신뢰하게 되었다.
자신감의 성격이 바뀌다
글쓰기 기록이 쌓이면서 생긴 자신감은, 이전에 내가 알고 있던 자신감과는 성격이 달랐다. 예전의 자신감은 잘 써진 글이 있을 때만 유지되었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쉽게 사라졌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 형성된 자신감은 훨씬 안정적이었다. 오늘 글이 잘 써지지 않아도, 기록 속에 쌓여 있는 이전의 흐름이 그 하루를 압도했다. 한 번의 부진이 전체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이 자신감은 ‘나는 잘 쓸 수 있다’는 확신이 아니라, ‘나는 계속 쓸 수 있다’는 믿음에 가까웠다. 이 차이는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기록이 만들어준 거리감
기록이 쌓이면서 또 하나 분명해진 변화는, 글쓰기 결과와 나 자신 사이에 적절한 거리감이 생겼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한 편의 글이 곧 나의 상태이자 나의 실력처럼 느껴졌다.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그날의 글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전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글 한 편에 감정이 과도하게 실렸고, 그만큼 글쓰기는 쉽게 흔들리는 일이 되었다.
하지만 기록을 계속 남기면서 글쓰기를 하나의 점이 아니라 흐름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오늘 쓴 글은 수많은 기록 중 하나일 뿐이고, 그날의 컨디션과 생각이 반영된 결과라는 인식이 생겼다. 글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것이 곧 나의 한계나 정체성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늘의 글은 오늘의 상태를 보여줄 뿐이며, 내일의 글은 전혀 다른 방향과 밀도를 가질 수 있다는 여유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거리감은 글쓰기를 훨씬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어주었다. 실패해도 괜찮고, 어설퍼도 괜찮다는 감각이 생기자 글 앞에서 긴장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예전에는 한 문장을 쓰기 전에도 평가를 먼저 떠올렸다면, 이제는 일단 써두고 나중에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글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는 확신은, 글을 더 솔직하게 쓰게 만드는 조건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 변화는 글쓰기의 자유도를 크게 높여주었다. 글이 잘 써진 날에도, 그렇지 않은 날에도 나 자신은 그대로라는 감각이 남았다. 그 덕분에 글쓰기는 자기 증명의 수단이 아니라, 상태를 기록하고 생각을 남기는 도구로 자리 잡았다. 기록이 쌓일수록, 글과 나 사이의 건강한 거리는 더 분명해졌고, 이 거리감은 앞으로도 글쓰기를 오래 이어가게 만드는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느낀다.
자신감이 행동을 바꾸다
글쓰기 기록이 쌓이면서 생긴 자신감은 머릿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실제 행동의 변화로 이어졌다. 예전에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만 떠올라도 먼저 부담부터 느꼈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이 글이 의미가 있을지, 끝까지 쓸 수 있을지 같은 질문들이 앞서면서 자연스럽게 미루는 선택을 반복했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담은 더 커졌고, 그 부담은 다시 행동을 멈추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기록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이 흐름이 조금씩 바뀌었다. 잘 쓴 글보다도, 계속 써온 기록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근거가 되었다. 이전에도 결국은 써냈고, 완벽하지 않아도 기록은 남았다는 경험이 축적되자, 글을 쓰기 전의 두려움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제는 완벽한 상태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일단 자리에 앉아 화면을 여는 선택을 훨씬 쉽게 한다.
이 변화와 함께 글쓰기의 기준도 달라졌다. 길게 쓰지 못해도 괜찮고,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라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는 인식이 자연스러워졌다. 짧은 문장 하나라도 남기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기준은 글쓰기를 일상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주었다. 글을 쓰는 일이 특별한 결심이 필요한 이벤트가 아니라, 그날의 상태를 확인하는 간단한 선택이 된 것이다.
이렇게 달라진 행동은 다시 기록을 쌓는 방향으로 이어졌다. 자주 쓰게 되자 기록은 더 빠르게 늘어났고, 늘어난 기록은 다시 자신감을 강화했다. ‘나는 계속 쓰고 있다’는 감각은 다음 행동을 더 가볍게 만들었다. 자신감이 행동을 만들고, 행동이 기록을 남기며, 그 기록이 다시 자신감을 키워주는 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 구조가 만들어진 이후로 글쓰기는 더 이상 의지력에만 의존하지 않게 되었다. 쓰고 싶을 때만 쓰는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상태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방식에 가까워졌다. 기록이 쌓여 만들어진 이 자신감은, 앞으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기반이 될 것이라고 느낀다.
기록이 남긴 가장 큰 선물
글쓰기 기록이 쌓이면서 생긴 자신감의 가장 큰 특징은, 그것이 외부의 인정과 거의 무관하다는 점이다. 누군가 읽어주었는지, 반응이 있었는지, 평가가 좋았는지는 이 자신감의 핵심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요소들이 사라졌을 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전에 느꼈던 자신감과는 성격이 달랐다. 기록은 조용히 쌓였고, 그 사실 자체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누군가의 칭찬이나 즉각적인 반응은 순간적인 동기가 될 수는 있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반면 기록은 남아 있었다. 하루에 몇 줄이든, 미완성이든, 잘 쓴 글이 아니어도 그날의 흔적은 분명히 존재했다. 이 축적된 기록들은 나에게 하나의 객관적인 증거가 되었다. 나는 글쓰기를 시도해왔고, 도망치지 않았으며,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계속 써왔다는 증거였다.
이 증거는 스스로를 설득하는 데 매우 강력했다. 글이 안 써질 때도, 실력이 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기록을 다시 보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남아 있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멈추지 않았고, 같은 고민을 반복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변화는 눈에 띄지 않게 진행되었지만, 기록을 통해 그 궤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점은 이 자신감이 비교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글과 나의 글을 비교하지 않아도,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를 나란히 놓아볼 수 있었다. 기록은 나만의 기준선을 만들어주었고, 그 기준선 위에서의 작은 이동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덕분에 글쓰기는 경쟁의 영역이 아니라, 축적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결국 이 자신감은 “잘 쓸 수 있다”는 확신이라기보다, “계속 쓸 수 있다”는 신뢰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 신뢰는 어떤 말이나 평가보다 오래 남았다. 기록이 쌓일수록, 나는 더 이상 외부의 증명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다. 이미 충분한 증거가 내 손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조용하지만 단단한 자신감이, 지금의 글쓰기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자신감의 결론
글쓰기 기록이 쌓이면서 생긴 자신감은 단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의 작은 기록들이 겹치고, 그 위에 시간이 쌓이면서 서서히 형성되었다. 이 자신감은 나를 과감하게 만들기보다는,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더 잘 쓰겠다는 욕심보다, 계속 쓰겠다는 태도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그 태도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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