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계속 쓰고 있지만 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
글쓰기 연습을 어느 정도 이어오고 있을 무렵, 나는 이상한 정체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매일 글을 쓰고 있었고, 기록도 남기고 있었지만 체감되는 변화는 크지 않았다.
문장을 시작하는 데 여전히 망설였고, 도입부에서 오래 머물렀으며, 완성까지 가져가지 못한 글도 많았다. 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부담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계속 써도 과연 늘기는 하는 걸까, 방향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글쓰기 연습을 그만둘지, 아니면 방식을 바꿔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전환점이 된 뜻밖의 하루
그 전환점은 의외로 특별하지 않은 날에 찾아왔다. 그날은 유난히 피곤했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거의 없었다. 평소라면 억지로라도 분량을 채우려 했겠지만, 그날은 기준을 크게 낮췄다. 잘 쓰려는 마음도, 구조를 잡겠다는 욕심도 내려놓고, 그냥 오늘 느낀 상태를 그대로 적어보기로 했다. 문장이 어색해도 고치지 않았고, 흐름이 산만해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쓴 글은 이전보다 훨씬 짧았지만, 처음으로 글을 쓰는 동안 크게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글을 끝까지 완성했다는 사실이 나에게 예상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완성의 경험이 남긴 감각
그날의 글은 지금 다시 읽어보면 특별히 잘 쓴 글은 아니다. 표현도 투박하고, 논리도 정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그 글은 나에게 ‘완성할 수 있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남겼다. 이전에도 글을 끝까지 쓴 적은 있었지만, 그날의 완성은 달랐다. 억지로 밀어붙인 결과가 아니라, 부담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도달한 완성이었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글쓰기에서 가장 큰 장벽은 실력이 아니라, 기준이라는 점이다. 기준을 낮추자 글은 움직였고, 그 움직임이 다시 쓰게 만드는 힘이 되었다.
글쓰기의 목표가 바뀌다
이 사건 이후, 글쓰기 연습의 목표는 분명하게 바뀌었다. 이전에는 잘 쓴 글을 남기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끝까지 가져가는 것이 기준이 되었다. 이 변화는 글쓰기의 모든 단계에 영향을 미쳤다. 도입부에서 오래 고민하지 않게 되었고, 중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 문장이 나와도 그대로 두었다. 수정은 나중의 일로 미뤘다. 이 단순한 기준 변화는 글쓰기 속도를 높였고, 글을 쓰는 횟수도 늘려주었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기록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전환점이 된 그 사건은 기록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전의 나는 기록마저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정제되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문장이 어색하면 안 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두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기록을 남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미 한 번 걸러진 생각만 적어두곤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기록에 대한 기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록은 완성된 글이 아니라, 그 순간의 상태를 그대로 남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다. 잘 정리된 문장보다, 어떤 마음으로 멈췄는지, 무엇이 막혔는지를 남기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이 변화는 기록의 문턱을 크게 낮춰주었고, 그 덕분에 이전에는 남기지 못했던 날들까지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쓰지 못한 날, 몇 문장 쓰다 멈춘 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순간들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런 상태 그대로를 기록으로 남기는 일이 허용되자, 기록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관찰의 도구가 되었다. 잘한 날만 남기는 기록이 아니라, 흔들린 날까지 포함하는 기록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 기록들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힘을 발휘했다. 당시에는 의미 없어 보였던 메모들이, 나중에는 글쓰기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주었다. 언제 막히는지, 어떤 감정에서 멈추는지, 무엇이 포기의 신호로 작동하는지가 기록 속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결국 이 전환점은 기록을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글쓰기 과정을 이해하게 해주는 가장 솔직한 자료로 만들어주었다.
전환점 이후에 생긴 작은 변화들
전환점 이후, 글쓰기 연습은 극적으로 변했다기보다는 서서히 안정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하루아침에 글이 잘 써지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글을 대하는 마음의 온도는 분명히 달라졌다. 글을 시작하기까지 머뭇거리는 시간이 눈에 띄게 줄었고, 예전처럼 한 문장에서 오래 멈춰 서는 일도 점차 줄어들었다. 글쓰기가 여전히 쉽지는 않았지만, 이전처럼 과도한 긴장 상태로 시작하지 않게 된 것이다.
중간에 멈추는 빈도가 감소한 것도 중요한 변화였다. 예전에는 막히는 순간이 곧 포기의 신호처럼 느껴졌다면, 이제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이어갈 수 있는 과정으로 받아들여졌다. 멈춤이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글의 흐름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덕분에 글쓰기는 단절된 시도가 아니라, 이어지는 과정으로 남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글쓰기를 더 이상 성공과 실패의 문제로 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글을 썼다면 그날의 훈련은 충분히 이루어진 것이고, 분량이나 완성도는 부차적인 요소가 되었다. 반대로 글을 쓰지 못한 날에도 스스로를 실패로 규정하지 않았다. 대신 왜 쓰지 못했는지, 어떤 조건이 글쓰기를 막았는지를 기록하는 것으로 그날의 훈련을 마무리했다.
이 새로운 기준은 글쓰기에 대한 압박을 크게 줄여주었다. 매일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 대신, 매일 이어갈 수 있다는 안정감이 자리 잡았다. 그 결과 글쓰기는 단기적인 성과를 증명하는 활동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훈련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토대 위에서 글쓰기는 더 이상 흔들리기 쉬운 결심이 아니라, 천천히 쌓여가는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나의 사건이 남긴 가장 큰 의미
글쓰기 연습 중 가장 큰 전환점이 된 사건은, 누군가의 인상적인 조언을 들은 날도 아니었고 새로운 글쓰기 방법을 배운 순간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준을 내려놓고, 그날의 글을 끝까지 완성해본 아주 평범한 하루였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지만, 그 경험은 글쓰기를 대하는 나의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이전까지의 글쓰기가 늘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그날 이후의 글쓰기는 ‘어떻게 계속 쓸 것인가’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날의 글은 결코 완성도가 높은 글은 아니었다. 문장은 다소 어색했고, 구조도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기준을 내려놓은 채 끝까지 써냈다는 사실이었다. 잘 쓰지 않아도 괜찮고,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마무리해도 된다는 경험은 생각보다 큰 해방감을 주었다. 글쓰기가 더 이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행동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계속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실력이 쌓이면 자연스럽게 글을 계속 쓸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실제로는 반대였다. 계속 쓰는 과정 속에서만 실력에 대한 감각도 함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완성이라는 경험이 쌓이자, 다음 글을 시작하는 문턱도 눈에 띄게 낮아졌다.
이후의 글쓰기 연습은 완전히 달라졌다기보다는, 방향이 분명해졌다. 더 잘 쓰기 위해 멈추는 대신, 부족하더라도 이어서 쓰는 선택을 하게 되었다. 그 평범했던 하루는 글쓰기 연습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기준점으로 남아 있다. 글쓰기는 재능이나 영감의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써보는 경험이 쌓이며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날을 통해 확실히 배우게 되었다.
전환점 이후의 글쓰기
지금도 글쓰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막히는 날은 여전히 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예고 없이 찾아온다. 문장이 한참 동안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이미 쓴 글을 다시 읽으며 괜히 시작했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글쓰기를 오래 해왔다고 해서 이런 순간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상태를 대하는 나의 태도다.
전환점이 된 그 사건 이후, 나는 글쓰기를 대하는 기준을 쉽게 놓치지 않게 되었다. 예전처럼 막힘을 실패로 규정하지 않고, 어색한 문장을 곧바로 지워버리지도 않는다. 완벽한 글을 쓰지 못해도 괜찮고, 흐름이 고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기준이 생겼다. 글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이유로 멈추는 대신, 그 상태 그대로 이어서 쓰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이 기준은 글쓰기를 훨씬 현실적인 행동으로 만들어주었다. 잘 써야만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글쓰기는 더 이상 특별한 각오가 필요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잘 안 써지는 날에도 한 문장을 남길 수 있었고, 그 한 문장은 다음 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이렇게 이어진 작은 연속들이 지금의 글쓰기 흐름을 만들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잘 썼느냐가 아니라, 멈추지 않았느냐였다. 글쓰기의 질은 하루아침에 결정되지 않지만, 계속 쓰는 태도는 매일 선택할 수 있다. 그 단순한 기준이, 지금까지 글쓰기를 이어오게 만든 가장 큰 힘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글쓰기가 흔들릴 때마다, 다시 돌아오게 해주는 기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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