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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지평선 4 - 사건의 지평선 밖에서 우리는 무엇을 오해하고 있을까

📑 목차

    1. 서론: 나는 ‘밖에 있다’는 말이 안전하다고 믿어 왔다

    나는 사건의 지평선을 떠올릴 때마다, 그 바깥에 있는 우리는 비교적 안전한 위치에 서 있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나는 사건의 지평선 안쪽이 위험하고 극단적인 공간이라면, 그 바깥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고 통제 가능한 영역이라고 여겨 왔다. 그러나 나는 이 생각이 얼마나 단순한 가정 위에 놓여 있는지 점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사건의 지평선 밖에 있다는 사실이 곧 정확한 이해를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밖’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블랙홀과 사건의 지평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해 온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 나는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서 우리가 흔히 가지는 오해들을 하나씩 짚어보며, 그 오해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차분히 살펴보려 한다.

     

    사건의 지평선 밖에서 우리는 무엇을 오해하고 있을까

    2.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을 하나의 선으로 오해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사건의 지평선을 지도 위에 그을 수 있는 선처럼 상상한다고 느꼈다. 나는 그 선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명확히 나뉘고, 그 경계가 항상 같은 위치에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상상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도 이해한다. 그러나 나는 이 상상이 사건의 지평선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고 느꼈다. 사건의 지평선은 우리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시가 아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특정 조건이 만족될 때 정의되는 개념이지, 공간 속에 물리적으로 그어져 있는 선이 아니다. 나는 이 점에서 우리가 사건의 지평선을 하나의 고정된 대상처럼 생각하는 순간, 이미 중요한 오해가 시작된다고 느꼈다. 사건의 지평선은 선이 아니라 관계이며, 상태이며, 결과다. 나는 이 차이를 놓칠 때, 사건의 지평선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3. 우리는 ‘밖에서 보면 다 알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사건의 지평선 밖에 있는 관측자가 모든 것을 더 잘 볼 수 있다고 믿어 온 태도에도 주목했다. 나는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시점이 언제나 더 객관적이고 정확할 것이라는 믿음이 우리 사고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사건의 지평선은 이 믿음을 정면으로 흔든다. 사건의 지평선 밖에 있는 우리는, 오히려 그 안쪽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나는 이 사실이 매우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가까이 가지 않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느끼지만, 동시에 가장 중요한 정보로부터는 완전히 차단된다. 나는 이 점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단순히 안쪽의 문제만이 아니라, 바깥에 있는 우리의 인식 한계를 드러내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다. 밖에 있다는 사실은 특권이 아니라, 제약일 수 있다.

    4.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을 공포의 상징으로만 소비한다

    나는 사건의 지평선이 대중적으로 소비되는 방식을 떠올려 보았다. 나는 영화나 이야기 속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종종 파괴와 소멸, 절대적인 끝의 상징으로 등장한다는 점을 느꼈다. 이런 이미지는 이해를 돕기보다는, 개념을 감정적으로 단순화시킨다. 나는 이 과정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가진 과학적 의미와 사고의 여지가 사라진다고 느꼈다. 사건의 지평선은 공포를 만들어내기 위해 존재하는 장치가 아니다. 사건의 지평선은 무엇이 가능한지와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구분하기 위해 정의된 경계다. 나는 우리가 공포에 집중할수록, 사건의 지평선이 던지는 질문을 놓치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 질문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디까지 알 수 있는가’에 가깝다.

    5.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을 이해했다고 너무 빨리 결론 내린다

    나는 사건의 지평선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이 개념을 이해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람들이 ‘넘으면 못 나온다’는 한 문장으로 사건의 지평선을 정리하는 모습을 자주 떠올렸다. 나는 이 표현이 직관적으로는 이해를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각을 멈추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이 한 문장은 결과만을 강조할 뿐, 그 결과가 왜 생기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럽게 지워 버린다. 나는 이런 태도가 사건의 지평선에 대한 오해를 고착시키는 출발점이라고 보았다.

    나는 사건의 지평선이 단순히 ‘되돌아올 수 없음’이라는 결과로만 정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졌다. 이 경계 안에는 시간의 흐름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문제,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현실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정보가 어디까지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나는 이 요소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조건 안에서 함께 작용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사건의 지평선을 결과 하나로 요약하는 순간, 이 복합적인 구조는 보이지 않게 된다.

    나는 우리가 사건의 지평선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순간을 곱씹어 보았다. 나는 그 순간이 실제로는 이해의 완성이 아니라, 이해를 멈추는 지점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종종 설명을 들었다는 사실만으로 개념을 소유했다고 느낀다. 그러나 나는 사건의 지평선 같은 개념 앞에서는, 설명을 들은 뒤에야 비로소 질문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해했다는 확신은 질문을 닫지만, 이해하려는 태도는 질문을 계속 열어 둔다.

    그래서 나는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 있는 우리가 여전히 질문해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는 왜 이런 경계가 생겨났는지, 이 경계가 우주의 어떤 조건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이 경계가 인간의 사고와 관측 능력에 어떤 한계를 보여주는지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 질문들이야말로 사건의 지평선을 단순한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사고를 확장시키는 계기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결국 사건의 지평선을 진짜로 이해하는 순간은, 모든 답을 얻었을 때가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일지도 모른다.

    6. 사건의 지평선 밖에서 다시 바라본 우리의 위치

    나는 사건의 지평선 밖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오해들을 하나씩 돌아보면서, 이 개념이 단순히 블랙홀 내부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느끼게 되었다. 나는 사건의 지평선이 특정한 천체 주변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경계가 아니라,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사건의 지평선은 단순히 ‘안’과 ‘밖’을 나누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경계가 동시에 ‘아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을 가르는 기준으로 작동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 바깥에 서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관측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이 믿음이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사건의 지평선 개념이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분명히 밖에 서 있지만, 그 위치가 곧 전지적인 시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가장 중요한 정보가 차단된 상태에서 추론만을 이어 가고 있다. 나는 이 사실이 인간의 인식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만든다고 느꼈다.

    나는 이 지점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우리에게 일종의 태도를 요구한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지평선은 인간에게 겸손함을 요구하는 개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전제를 내려놓고, 어떤 영역은 본질적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이 인식이 좌절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확한 이해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이라고 느꼈다. 우리가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질문은 더 정교해진다.

    사건의 지평선은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려 할 때, 어디까지 질문할 수 있고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기준이 된다. 나는 이 기준이 사고를 제한하기보다는, 오히려 사고의 방향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알 수 없는지를 아는 일은, 무엇을 알 수 있는지를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나는 이 점에서 사건의 지평선 밖에 서 있는 우리의 오해를 바로잡는 일이, 우주를 더 정확하고 성숙하게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느꼈다.

    7. 결론: 밖에 있다는 사실이 답은 아니다

    나는 결국 사건의 지평선 밖에 있다는 사실이 곧 이해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는 밖에서 많은 것을 관측할 수 있지만, 동시에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사건의 지평선은 그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개념이다. 나는 우리가 이 경계를 단순한 공포의 선이나 위험의 표시로 소비하는 대신, 인식의 한계를 보여주는 기준으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사건의 지평선 밖에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은 블랙홀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해 능력과 확신을 함께 오해하고 있다. 나는 이 깨달음이 사건의 지평선을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진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