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쓰기 훈련 과정 22 - 글을 잘 쓰려고 할수록 더 안 써졌던 경험

📑 목차

    잘 써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 순간부터

    글을 쓰기 시작한 초반에는 오히려 부담이 적었다. 잘 써야 한다는 기준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을 써야 하는지 몰랐지만, 그만큼 자유로웠다. 문장이 어색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고,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도 일단 적어 내려갔다.

     

    그런데 글을 계속 쓰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이제는 좀 더 잘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글쓰기 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에게 기준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기준은 의외로 빠르게 글쓰기의 발목을 잡았다.

     

    글을 잘 쓰려고 할수록 더 안 써졌던 경험

    기준이 생기자 멈춤이 시작되었다

    글을 잘 쓰려고 마음먹은 이후, 글쓰기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문장을 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했고, 쓰고 나서도 계속 고쳤다. 도입부에서 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첫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지 못했고, 결국 아무 문장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은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보다는, 글을 시작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처음으로, 글쓰기에서 기준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체감하게 되었다.

    잘 쓴 글의 이미지가 만든 압박

    글이 안 써지기 시작한 이유를 곱씹어보니, 머릿속에 ‘잘 쓴 글’의 이미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 글은 논리적이고, 문장이 매끄러우며, 읽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글이었다. 문제는 그 이미지가 너무 구체적이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내가 쓰고 있는 글은 그 이미지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고, 비교의 결과는 늘 부족함이었다. 이 부족함은 다시 멈춤으로 이어졌다. 글을 잘 쓰려는 욕심이, 현재의 나와 이상적인 글 사이의 거리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었던 셈이다.

    통제하려는 마음이 만든 역설

    글을 잘 쓰려고 할수록 더 안 써졌던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지나치게 통제하려 했기 때문이다. 문장의 흐름, 구조, 메시지를 한 번에 잡으려고 했다. 글을 쓰는 동시에 편집자 역할을 수행하려 했고, 그 결과 생각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글쓰기는 본래 생각이 흐르는 과정인데, 나는 그 흐름을 자꾸 멈춰 세우고 점검하려 했다. 이 통제는 글의 질을 높이지 않았고, 오히려 글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잘 쓰려는 마음이 만든 자기 검열

    잘 쓰려는 마음은 자연스럽게 자기 검열로 이어졌다. 이 문장은 의미가 있는지, 이 표현은 너무 평범하지 않은지, 이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 같은 질문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이런 질문들은 모두 중요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글쓰기를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필요하지 않은 질문들이었다. 자기 검열은 생각을 보호하는 대신, 표현을 가로막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글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되었다.

    기준을 낮추면서 다시 쓰기 시작하다

    이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한 선택은, 잘 쓰려는 목표를 잠시 내려놓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글을 쓰는 순간마다 완성도를 의식했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면 쉽게 멈춰버리곤 했다.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더 잘 쓰는 사람이 되려는 목표 대신, 일단 끝까지 써보는 사람이 되기로 한 것이다. 이 변화는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했다. 어색한 문장을 그대로 남겨두고,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을 고치지 않은 채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일은 처음에는 불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장이 어색해도 고치지 않기로 했고, 구조가 엉성해 보여도 그대로 두기로 했다. 글이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전제를 스스로에게 허락한 셈이었다. 대신 정해둔 것은 하나뿐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끝까지 쓰는 것. 중간에서 멈추지 않고 마지막 문장까지 도달하는 것을 그날의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놀랍게도 이 선택은 글을 다시 흐르게 만들었다. 잘 쓰려고 애쓸 때는 한 문장을 붙잡고 오래 맴돌았지만, 끝까지 쓰겠다고 마음먹자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는 일이 훨씬 쉬워졌다. 덜 쓰려 할 때, 덜 완벽하려 할 때 오히려 더 많은 문장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글의 질을 통제하려는 힘을 내려놓자, 생각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글쓰기에서 목표 설정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었다. 목표가 ‘잘 쓰기’일 때 글쓰기는 쉽게 멈췄지만, 목표가 ‘끝까지 쓰기’일 때 글쓰기는 계속될 수 있었다.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의 난이도는 크게 달라졌다. 잘 쓰는 글은 나중의 문제였고, 끝까지 써본 글만이 다음 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선택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잘 쓰는 것과 쓰는 것의 순서

    글을 잘 쓰려고 할수록 오히려 글이 나오지 않았던 경험을 통해, 나는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잘 쓰는 것과 쓰는 것 사이에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순서가 있다는 점이다. 쓰지 않으면 잘 쓸 수 없고, 잘 쓰려는 마음이 앞서면 정작 쓰는 행위는 쉽게 사라진다. 이 말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 체감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글을 쓰는 순간이면 다시 완성도를 먼저 따지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글이 안 써지는지 이유를 찾기 위해 애썼다. 집중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소재가 없어서라고 핑계를 대기도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문제는 항상 같았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이 글은 괜찮아야 한다’는 조건을 붙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 조건은 글쓰기의 출발선을 지나치게 높여버렸고, 그 결과 첫 문장 앞에서 오래 멈추게 만들었다.

    쓰는 것보다 잘 쓰는 것을 먼저 생각할 때, 글쓰기는 행동이 아니라 판단이 된다. 문장을 만들어내는 시간보다 평가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한 문장을 쓰기까지 필요한 에너지도 과도하게 커진다. 반면 순서를 바꾸어, 일단 쓰는 것을 먼저 두자 상황은 달라졌다. 글이 좋든 나쁘든, 완성도가 있든 없든, 쓰는 행위 자체를 우선했을 때 비로소 글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 순서를 이해하고 나니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도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잘 써야 한다는 압박 대신, 지금은 그냥 쓰면 된다는 기준이 생겼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판단을 미루고, 쓰기가 끝난 뒤에야 생각해보자는 여유도 생겼다. 이 변화는 글쓰기의 부담을 크게 줄여주었고, 동시에 글쓰기를 다시 일상의 영역으로 돌려놓았다.

    잘 쓰는 것은 목표가 될 수 있지만, 출발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출발점은 언제나 쓰는 것이다. 이 순서를 몸으로 이해하게 된 이후, 나는 더 이상 글을 쓰기 전에 스스로를 시험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도 한 번 써보자는 마음으로 글 앞에 앉는다. 그리고 바로 그 태도가, 글쓰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에게 남은 기준

    지금도 글을 쓰다 보면, 가끔씩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든다. 문장을 조금 더 다듬고 싶어지고, 이 글이 과연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순간도 여전히 찾아온다. 예전에는 이런 욕심이 생기면 곧바로 글쓰기가 느려지거나 멈춰버리곤 했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면서, 한 문장을 쓰는 데에도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욕심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알고 있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욕심이 글쓰기의 흐름을 끊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다. 그래서 지금은 그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예전처럼 그 안으로 깊이 빠져들지는 않는다. ‘아, 또 잘 쓰고 싶어지고 있구나’ 하고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하나의 기준이 자리 잡고 있다. 잘 쓰는 것은 결과이고, 쓰는 것은 과정이라는 기준이다. 이 기준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 이후로, 글을 쓰는 동안에는 결과를 잠시 미뤄둘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의 글이 얼마나 좋은지, 누가 어떻게 볼지보다는, 일단 쓰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집중하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글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면, 글을 잘 쓰려고 할수록 오히려 더 안 써졌던 그 경험은 나에게 꽤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그때는 좌절로만 느껴졌지만, 지금은 글쓰기의 본질을 몸으로 이해하게 만든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쓰지 않으면서 잘 쓰려고 했던 태도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그리고 그 순서를 바로잡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글쓰기는 더 이상 잘 쓰기 위한 시험이 아니다. 쓰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나아가는 연습에 가깝다.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그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지금의 내가 글쓰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변화이자 성과라고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