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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만으로는 남지 않는 것들
글쓰기 연습을 시작하면 대부분 ‘얼마나 많이 썼는가’에 집중하게 된다. 오늘도 글을 썼는지, 분량을 채웠는지, 어제보다 나아졌는지가 자연스럽게 기준이 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훈련이라고 생각했고, 그 과정은 굳이 따로 남기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글은 남아도, 글을 쓰던 상태와 과정은 거의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쉽게 써졌고, 어떤 날은 유난히 힘들었지만, 완성된 글만 남기고 나면 그 차이는 쉽게 잊힌다. 이때부터 나는 글쓰기 연습을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으로 남길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기록은 성장의 증거를 만들어준다
글쓰기 연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장의 증거를 스스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변화가 아주 느리게 나타나는 활동이다. 하루 이틀 사이에는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고, 몇 주가 지나도 여전히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이때 기록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나는 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 이전의 고민, 막히던 지점, 쓰지 못했던 날의 이유들을 다시 읽어보면 분명한 변화가 보인다. 예전에는 시작조차 어려웠던 사람이, 지금은 도입부에서 막힌다는 고민을 하고 있고, 문장을 줄이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성장의 증거다. 기록은 이런 변화를 눈에 보이게 만들어준다.
기록은 글쓰기를 계속하게 만든다
글쓰기 연습을 기록으로 남기는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글쓰기를 멈추지 않게 만드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매일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은 반드시 찾아온다. 이때 기록이 없다면, 하루의 공백은 쉽게 포기로 이어진다. 반면 글을 쓰지 못한 이유, 그날의 상태를 간단하게라도 기록해두면 흐름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는다. 기록은 글쓰기의 연속성을 유지해준다. 쓰지 못한 날조차 기록의 일부가 되면서, 글쓰기 훈련은 하루 단위의 성과가 아니라 긴 흐름으로 인식된다. 이 인식 변화는 글쓰기를 훨씬 오래 지속하게 만든다.
기록은 자기 검열을 줄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검열 때문이다. 잘 써야 한다는 생각, 의미 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압박은 손을 쉽게 멈추게 만든다. 하지만 글쓰기 연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면, 글의 목적이 달라진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상태를 남기기 위한 기록이 된다. 목적이 바뀌면 기준도 바뀐다. 완성도보다 솔직함이 중요해지고, 잘 쓴 문장보다 현재의 생각을 담는 것이 우선이 된다. 이 기준 변화는 자기 검열을 눈에 띄게 줄여준다. 기록은 글을 평가 대상이 아니라 관찰 대상으로 바꿔준다.
기록은 반복되는 패턴을 드러낸다
글쓰기 연습을 기록으로 남기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반복되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글이 잘 써지는 시간대, 자주 막히는 지점, 특정 주제에서 느끼는 부담 같은 것들이 기록 속에서 드러난다. 이 패턴은 글을 더 잘 쓰기 위한 힌트가 된다. 막연히 ‘나는 글을 못 쓴다’고 느끼는 대신, ‘나는 도입부에서 부담을 느낀다’거나 ‘완성도를 의식할 때 멈춘다’는 식으로 문제를 구체화할 수 있다. 기록이 없었다면 이런 인식은 생기기 어렵다. 기록은 감각을 데이터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기록은 글쓰기의 기준을 바꾼다
글쓰기 연습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면, 글쓰기의 기준도 자연스럽게 함께 바뀐다. 이전에는 좋은 글, 잘 쓴 글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문장이 매끄러운지, 메시지가 분명한지, 남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지 같은 기준이 늘 앞에 놓여 있었다. 이런 기준 아래에서는 글을 쓰는 행위보다, 결과로 남을 글의 상태가 먼저 평가되었다. 그만큼 글쓰기는 항상 긴장과 부담을 동반했다.
하지만 글쓰기 연습 자체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하면서 기준은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이동했다. 이제는 어제보다 더 솔직한 글을 썼는지, 글이 멈췄다면 그 이유를 이해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었다. 문장이 완성되지 않아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그날의 상태가 기록으로 남았는지, 그리고 그 기록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였다.
이 기준 변화는 글쓰기의 부담을 눈에 띄게 줄여주었다. 글을 잘 쓰지 못한 날도 의미 있는 하루로 남기게 되었고, 이전 같았으면 지워버렸을 기록들이 훈련의 일부로 쌓이기 시작했다. 글이 잘 안 써진 날의 기록은 다음 글을 위한 힌트가 되었고, 반복되는 패턴을 발견하게 해주는 자료가 되었다. 덕분에 모든 날이 글쓰기 훈련의 일부가 되었고, 특정한 날만 특별하게 평가할 필요도 없어졌다.
이 인식의 변화는 글쓰기를 평가의 대상에서 과정의 일부로 되돌려놓았다. 글을 잘 썼는지 못 썼는지를 따지기보다, 오늘의 글쓰기가 어떤 경험이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 과정 중심의 시선은 글쓰기를 훨씬 오래, 그리고 덜 지치게 만들었다. 글쓰기 연습은 더 이상 결과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매일의 상태를 기록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체감하게 되었다.
기록은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메모
글쓰기 연습 기록은 현재의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당장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면 그 기록은 분명 미래의 나에게 보내는 메모가 된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고민을 이미 지나온 사람이 되어 있고, 이 기록은 과거의 상태를 정확하게 불러오는 단서가 된다.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고민과 막힘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 있다. 당시에는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정체의 순간이, 나중에는 방향을 바꾸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이기도 한다. 글이 안 써졌던 날의 기록, 망설이다 멈춘 문장, 의미 없어 보였던 메모 한 줄이 이후의 글쓰기 태도를 형성한 계기로 읽히는 순간도 찾아온다.
과거의 내가 어떤 이유로 멈췄고, 무엇이 부담이 되었으며, 어떤 선택을 통해 다시 시작했는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이후의 글쓰기에서 큰 자산이 된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왔을 때, 막연히 흔들리는 대신 “이건 예전에 이런 방식으로 지나왔던 지점”이라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은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게 해주는 지도와도 같다.
이렇게 쌓인 글쓰기 연습 기록은 단순한 일지가 아니라, 시간에 걸쳐 이어지는 대화가 된다. 과거의 내가 남긴 문장을 현재의 내가 읽고, 그에 대한 답을 또다시 기록한다. 글쓰기는 그 순간만 존재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렇게 시간을 넘어 자신과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기록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글쓰기 연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의 결론
글쓰기 연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기록이 없으면 우리는 쉽게 자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 잊어버리고, 늘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는 감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어제도 비슷하게 막혔고, 오늘도 같은 이유로 멈춘 것처럼 느껴질 때, 기록은 실제로는 조금씩 이동해왔다는 사실을 증명해준다. 보이지 않는 변화를 붙잡아두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기록이다.
기록은 글쓰기의 속도를 눈에 띄게 빠르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대신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준다. 지금 내가 느끼는 막힘이 처음인지, 반복되는 패턴인지, 혹은 이전에도 지나왔던 구간인지를 알게 해준다. 방향을 알고 있다는 감각은 속도보다 훨씬 중요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 채 빠르게 쓰는 것보다, 느리더라도 길을 잃지 않고 가는 편이 글쓰기를 오래 지속하게 만든다.
잘 쓴 글만 남기겠다는 기준을 내려놓고, 쓰는 과정 전체를 남기기로 선택했을 때 글쓰기는 전혀 다른 성격의 훈련이 된다. 잘 안 써진 날의 기록, 중간에서 멈춘 문장, 쓰기 싫었던 이유까지 모두 포함되면서 글쓰기는 성공과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 흐름 위에서는 하루를 빠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는 일도 줄어든다.
결국 글쓰기 연습은 완성된 글의 개수로 완성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과정을 기록으로 남겼는지, 그 기록이 얼마나 솔직하고 밀도 있게 쌓였는지가 글쓰기의 깊이를 만든다. 기록은 결과를 대신하지는 않지만, 결과로 가는 길을 계속 열어둔다. 그래서 글쓰기 연습에서 기록은 선택이 아니라, 지속을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조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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