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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훈련 과정 19 - 글이 잘 써진 날과 안 써진 날의 차이

📑 목차

    잘 써진 날을 기준으로 삼기 시작했을 때

    글쓰기 훈련을 이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어떤 날은 글이 비교적 수월하게 흘러가고, 어떤 날은 몇 줄을 쓰는 데도 유난히 많은 시간이 걸린다. 처음에는 이 차이를 기분이나 재능의 문제로만 생각했다.

     

    컨디션이 좋으면 잘 써지고, 그렇지 않으면 안 써진다는 단순한 해석이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반복되는 패턴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글이 잘 써진 날을 기준으로 삼고, 그날의 상태와 행동을 하나씩 되짚어보기 시작했다.

     

    잘 써진 날을 우연으로 넘기지 않고 분석 대상으로 삼는 순간, 글쓰기의 감각은 조금씩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글이 잘 써진 날과 안 써진 날의 차이

    잘 써진 날의 공통된 특징

    글이 잘 써진 날에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글을 시작하기 전의 태도였다. 그날은 결과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고, ‘잘 써야 한다’는 생각보다 ‘일단 써보자’는 마음이 앞서 있었다. 도입부에서 오래 머물지 않았고,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글의 목적이 비교적 분명했다는 점이다. 이 글을 통해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지, 어떤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지가 어렴풋하게라도 정리되어 있었다. 완벽한 구조는 아니었지만, 최소한 방향은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는 글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쓰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았다.

    안 써진 날의 미묘한 신호들

    반대로 글이 안 써진 날에는 분명한 신호들이 존재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지쳐 있다는 감각이었다. 글을 쓰기 전부터 오늘은 힘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고, 그 예감은 대부분 현실이 되었다. 이때는 글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문장을 평가하게 된다.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바로 고치고, 다시 지우고, 또 망설인다. 글을 쓰고 있는 시간이 아니라, 멈춰 있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또 하나의 특징은 글의 목적이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보다, 무엇을 써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앞섰다. 이 차이는 글의 흐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잘 써진 날과 안 써진 날의 핵심 차이

    글이 잘 써진 날과 안 써진 날의 가장 큰 차이는 실력이나 재능이 아니었다. 그 차이는 ‘통제하려는 정도’에 있었다. 잘 써진 날에는 글을 통제하려는 마음이 적었고, 안 써진 날에는 글을 지나치게 통제하려고 했다. 문장을 원하는 형태로 만들려고 애쓸수록 글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반면 잘 써진 날에는 글이 어느 정도 흐르도록 내버려두었고, 수정은 나중의 일로 미뤄두었다. 이 태도의 차이가 글쓰기의 체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글쓰기 환경이 미치는 영향

    환경 역시 두 날의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잘 써진 날에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요소를 미리 줄여두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을 짧게라도 확보했고, 다른 일을 동시에 처리하려 하지 않았다. 반면 안 써진 날에는 글쓰기 시간이 다른 일정 사이에 끼어 있었고, 집중이 자주 끊겼다. 흥미로운 점은 환경이 완벽하지 않아도 글이 잘 써질 수는 있었지만, 환경이 지나치게 산만한 날에는 거의 예외 없이 글이 막혔다는 사실이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업이었다.

    잘 써진 날에도 존재하는 불안

    글이 잘 써진 날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그날에도 여전히 불안은 존재했고, 지금 쓰고 있는 문장이 과연 괜찮은지에 대한 의심도 반복해서 고개를 들었다. 문장을 쓰다가도 ‘이 표현이 너무 평범하지 않은가’, ‘이 생각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같은 질문이 스쳐 지나갔다. 불안이 사라졌기 때문에 글이 잘 써진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여러 날의 기록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되었다.

    다만 분명한 차이가 하나 있었다. 잘 써진 날에는 그 불안을 글을 멈추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안이 있어도 일단 쓰고, 판단은 나중에 하자는 태도가 유지되었다. 불안은 존재했지만, 글쓰기의 흐름 앞에 서서 길을 막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불안을 옆에 두고, 일단 생각을 끝까지 따라가 보려는 선택이 가능했다.

    반대로 글이 잘 써지지 않았던 날에는, 그 불안이 곧바로 멈춤의 이유가 되었다.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순간, 더 써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앞섰고, 그 생각은 키보드에서 손을 떼게 만들었다. 불안은 판단이 되었고, 판단은 곧 중단으로 이어졌다. 같은 불안이었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식이 전혀 달랐던 셈이다.

    이 작은 차이는 하루의 글쓰기 경험을 크게 갈라놓았다. 불안을 안고도 계속 쓸 수 있었던 날에는, 글의 길이나 완성도와 상관없이 ‘썼다’는 감각이 남았다. 그 감각은 다음 날의 글쓰기를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반면 불안에 멈춰 선 날에는, 글을 쓰지 못했다는 기억만 남았고 그 기억은 다시 불안을 키웠다.

    이 과정을 거치며 알게 된 것은, 글쓰기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불안의 유무가 아니라 불안 이후의 선택이라는 점이었다. 불안을 없애려고 애쓰기보다, 불안이 있어도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는 태도를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잘 써진 날과 안 써진 날의 차이는 재능이나 컨디션이 아니라, 바로 이 지점에서 갈라지고 있었다.

    차이를 알게 된 이후의 변화

    글이 잘 써진 날과 안 써진 날의 차이를 의식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한 이후, 나는 안 써진 날을 대하는 태도부터 분명히 달라졌다. 예전에는 그런 날을 곧바로 실패로 규정했고, 그 판단이 하루 전체의 글쓰기 경험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글이 안 써졌다는 사실보다, 그렇게 판단해버린 태도가 더 큰 부담으로 남았던 셈이다. 하지만 이제는 글이 안 써지는 날도 하나의 상태로 받아들인다. 컨디션이나 집중력처럼, 매일 달라질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 관점이 바뀌자, 잘 써진 날의 조건을 억지로 재현하려는 시도도 줄어들었다. 이전에는 “어제는 잘 됐는데 오늘은 왜 안 되지”라는 생각에 매달리며, 같은 환경과 같은 마음가짐을 만들어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대부분 실패로 끝났고, 오히려 글쓰기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지금은 잘 써진 날을 기준으로 삼기보다, 안 써진 날에도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그래서 안 써진 날에는 부담을 낮추는 조정을 의식적으로 한다. 분량 기준을 과감하게 낮추거나, 생각을 정리하기보다는 그날의 상태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바꾼다. 글을 잘 쓰려 하기보다, 오늘 글쓰기가 왜 어려운지를 적는 쪽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은 글쓰기의 문턱을 눈에 띄게 낮춰주었고, 완전히 멈춰버리는 상황을 많이 줄여주었다.

    이 조정의 핵심은, 안 써진 날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는 데 있다. 대신 그날에 맞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자 글쓰기는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다음 날로 이어질 여지도 자연스럽게 남았다. 잘 써진 날을 늘리려는 노력보다, 안 써진 날을 부드럽게 넘기는 선택이 글쓰기를 훨씬 오래 이어가게 만든다는 사실을, 이 경험을 통해 분명히 체감하게 되었다.

    잘 써진 날은 만들 수 없지만, 준비할 수는 있다

    결국 글이 잘 써진 날과 안 써진 날의 차이는 통제할 수 없는 영역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는 사실로 정리된다. 감정의 높낮이나 그날의 컨디션, 집중력의 정도는 노력만으로는 쉽게 조절되지 않는다. 어떤 날은 특별한 이유 없이 생각이 잘 이어지고, 또 어떤 날은 같은 환경임에도 문장 하나가 버겁게 느껴진다. 이런 차이는 글쓰기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상태가 가진 자연스러운 변동에 가깝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나는 잘 써진 날을 기준으로 삼았다. 글이 잘 풀리는 날에 맞춰 스스로를 평가했고, 그렇지 않은 날은 괜히 의욕이 부족한 날로 판단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기준으로 삼을수록 글쓰기는 불안정해졌다. 상태가 좋을 때만 쓸 수 있는 글쓰기는 결국 오래 이어지기 어렵다는 점을, 여러 번의 중단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반면 글을 대하는 태도와 환경은 어느 정도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글을 쓰는 시간대를 유연하게 두거나, 분량 기준을 상황에 따라 조정하고, 초안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의 문턱은 크게 낮아졌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도 최소한의 기록은 남길 수 있었고, 그 기록은 다음 날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더 이상 잘 써진 날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어떤 날이든 글쓰기를 이어갈 수 있는 조건을 미리 만들어두려고 한다. 집중이 잘 되는 날에는 깊이 있게 쓰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상태를 기록하는 데 그친다. 글쓰기의 형태는 달라질 수 있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도록 구조를 잡아두는 것이다.

    물론 글이 잘 써진 날은 여전히 반갑다. 그런 날에는 글을 쓰는 즐거움이 선명하게 느껴지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함께 회복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안 써진 날에도 글쓰기가 완전히 멈추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안 써진 날이 곧 공백이었지만, 지금은 그것 역시 글쓰기 과정의 일부로 남는다.

    지금의 상태는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가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균형점에 가깝다. 최고의 날을 기다리는 대신, 어떤 날에도 다시 글로 돌아올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태도. 이 변화는 겉으로 보기에는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글쓰기 훈련에서 가장 의미 있는 전환점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