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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훈련 과정 17 - 매일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을 기록하는 이유

📑 목차

    쓰지 못한 날을 지우고 싶었던 마음에서 시작된 기록

    글쓰기 훈련을 시작했을 때 나는 ‘매일 쓰기’라는 기준을 꽤 엄격하게 세워두었다. 하루라도 빠지면 그날은 실패한 날처럼 느껴졌고, 달력에서 그 날짜를 의식적으로 지워버리고 싶었다.

     

    글을 쓰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결과적으로 쓰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만 남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하는 일조차 꺼렸다. 기록이란 잘 해낸 날, 목표를 지킨 날에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태도가 오히려 글쓰기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쓰지 못한 날을 외면할수록, 그 다음 날의 글쓰기는 더 무거워졌기 때문이다.

     

    매일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을 기록하는 이유

    쓰지 못한 날에도 분명히 남아 있는 것들

    매일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은 계기는, 쓰지 않았다고 해서 그날이 완전히 비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부터였다. 글은 쓰지 않았지만, 생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고, 피로감이나 감정의 변화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날의 상태를 돌아보면, 왜 글을 쓰지 못했는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과도한 기대, 집중력의 고갈, 글에 대한 부담 같은 것들이 쌓여 있던 날도 있었고, 단순히 휴식이 필요했던 날도 있었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안 쓴 날’로만 처리해버리면, 글쓰기 과정에서 중요한 정보들이 모두 사라진다.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날의 상태를 글쓰기 훈련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일이었다.

    실패의 기록이 아니라 흐름의 기록

    매일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을 기록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흐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글쓰기 훈련은 직선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잘 써지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 쓰고 싶은 날과 피하고 싶은 날이 번갈아 나타난다. 이 흐름을 기록하지 않으면, 글쓰기 과정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된다. 나는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하면서, 글쓰기가 막히기 전에는 어떤 신호들이 있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며칠간 무리하게 분량을 늘렸던 시기, 완성도에 대한 집착이 강해졌던 시기 이후에 쓰지 못한 날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 기록은 이후의 글쓰기 방식을 조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기록의 역할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하기 전에는, 그 하루가 지나갈수록 죄책감이 쌓였다. 그 죄책감은 다음 날 글을 쓰는 데 방해가 되었다. ‘어제도 못 썼는데 오늘은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면서, 오히려 글을 시작하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쓰지 못한 날의 이유를 간단하게라도 기록해두자, 이 죄책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글을 쓰지 못한 날에도 나름의 선택과 상태가 있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인정은 자기 합리화와는 달랐다. 변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일이었다.

    쓰지 못한 날이 알려준 나의 한계

    매일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을 기록하면서, 나는 나의 한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언제 무리하고 있는지, 어떤 기준이 부담으로 작용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글쓰기를 회피하게 되는지가 분명해졌다. 이 정보는 글을 많이 쓴 날의 기록보다 오히려 더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 잘 쓴 날은 반복하기 어렵지만, 쓰지 못한 날의 원인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을 통해 나는 분량을 낮추고, 완성에 대한 기준을 완화하며, 쉬는 날을 의도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글쓰기 방식을 바꾸게 되었다.

    매일 쓰지 않아도 이어지는 글쓰기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하루를 놓쳤다고 해서 글쓰기의 흐름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실제로 체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하루라도 빠지면 그 공백이 크게 느껴졌다. ‘어제 못 썼으니 오늘은 더 잘 써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고, 그 부담 때문에 오히려 며칠씩 글을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하루의 공백이 곧 실패처럼 인식되었고, 그 인식이 흐름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쓰지 못한 날 자체를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이 구조는 완전히 달라졌다. 글을 쓰지 못한 이유를 짧게라도 남기면, 그날은 더 이상 빈칸이 아니게 되었다. 어제는 왜 쓰지 못했는지, 무엇이 글쓰기를 막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 날 글쓰기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라 이어서 하는 작업이 되었다. 오늘은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지가 분명해졌고, 그 덕분에 시작 앞에서 망설이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었다.

    이 작은 기록은 심리적인 연속성을 만들어주었다. 하루를 놓쳤다는 사실보다, 흐름 안에 여전히 내가 있다는 감각이 더 크게 남았다. 쓰지 못한 날의 기록은 변명이나 자기합리화가 아니라, 다음 날을 위한 안내문처럼 작동했다. 그래서 이제는 하루를 건너뛰더라도 글쓰기와 완전히 멀어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 연결감은 글쓰기 훈련을 훨씬 지속 가능하게 만들어주었다. 매일 완벽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감각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쓰지 못한 날을 인정하고 기록하는 태도는, 글쓰기 훈련에서 끊어짐을 줄이고 회복력을 높여주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이 경험을 통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기록의 대상은 ‘성과’가 아니라 ‘과정’

    매일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을 기록하는 이유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기록의 대상을 성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옮기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다. 성과 중심의 기록은 잘한 날만 남긴다. 분량을 채운 날, 끝까지 완성한 글이 있는 날, 스스로 만족스러웠던 순간만 기록으로 살아남는다. 반면 과정 중심의 기록은 그 이면에 있었던 멈춤과 흔들림까지 함께 포함한다. 글이 안 써졌던 날, 시작조차 못 했던 날, 마음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했던 날 역시 글쓰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글쓰기 훈련은 바로 이 과정 위에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글을 늘게 만드는 것은 잘 쓴 결과 몇 편이 아니라, 쓰지 못한 날에 무엇이 나를 멈추게 했는지를 이해하는 경험이다. 그날의 상태를 기록해두면, 글쓰기가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흐름 속의 한 지점으로 남는다. 실패처럼 느껴졌던 하루도, 다음 날을 위한 맥락이 된다.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하는 일은 글쓰기에서 도망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넘어가는 대신, 쓰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태도는 자기비난과는 다르다. 오히려 글쓰기와의 관계를 끊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연결을 유지하는 방식에 가깝다.

    잘 쓴 날뿐 아니라, 쓰지 못한 날까지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는 글쓰기를 훨씬 오래 지속하게 만든다. 글쓰기는 늘 잘될 수 없다는 전제를 받아들이는 순간, 중단의 이유는 줄어든다. 기록의 범위를 넓히는 것만으로도 글쓰기 훈련은 더 단단해진다. 성과가 아니라 과정을 남기겠다는 선택은, 결국 글쓰기를 끝까지 놓지 않게 만드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쓰지 못한 날도 글쓰기의 일부라는 결론

    지금도 여전히 매일 글을 쓰지 못하는 날은 찾아온다. 아무리 글쓰기가 습관이 되었다고 해도, 컨디션이 떨어지거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날은 어김없이 생긴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런 하루를 실패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글을 쓰지 못했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날의 상태를 그대로 기록한다. 왜 손이 멈췄는지, 어떤 생각이 글쓰기를 밀어냈는지, 혹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쓰기 싫었던 날이었는지를 짧게라도 남긴다. 이 기록은 반성이 아니라 관찰에 가깝다.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나면, 다음 날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이미 어제의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어디에서부터 다시 이어 가야 할지 막막하지 않다. 매일 글을 쓰지 못했던 날을 기록하는 이유는 결국 글쓰기를 끊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글을 쓰지 못한 날과 쓴 날 사이에 단절을 만들지 않으려는 선택이다. 하루를 빠졌다는 사실보다, 그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남기는 일이 더 중요해진다.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하는 순간, 그날은 더 이상 공백이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칸이 아니라, 다음 글을 위한 맥락이 된다. 그날의 기록은 다음 날 문장의 출발점이 되고, 생각의 연결고리가 된다. 그렇게 보면 글쓰기는 매일 완성된 글을 남기는 일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상태를 이어 붙이는 과정에 가깝다. 쓰지 못한 날의 기록은 바로 그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방식 덕분에 글쓰기는 더 이상 완벽한 연속성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를 쉬어도 흐름은 남아 있고, 멈춰도 다시 돌아올 자리가 분명하다. 쓰지 못한 날을 기록하는 일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가장 현실적인 약속이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쌓이면서, 글쓰기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계속 이어지고 있다.